2006/09/11 06:25

민주노동당은 '오른쪽 날개'가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은 '오른쪽 날개'가 필요하다
당 활동가들에게 고함…지지자 소외시키는 정당

1.

그 날, 8월 20일 울산에서 나는 민주노동당 활동가들에게 고(告)하고 싶었다. 교육보다 학습이, 그리고 소통이 급하다고, 다시 말해서 당원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고민하기 전에 스스로 공부하는 일이 급하고 당원, 그리고 지지자와 대화를 하는 것이 중(重)하고 급(急)하다고.

작은 성공으로 잠시 잊고 있었던 민주노동당의 운명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나는 새삼스럽게 민주노동당의 족보를 밝히고 혈통을 들추어냈다. 그건 지친 당 활동가들에게 다시 한번 우리가 가는 길을 상기시키고, 그 길에서 당 활동가들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당은 ‘독일사민당형’이라기보다는 ‘영국노동당형’ 진보정당이다. 또한 그것은, ‘작은’ 성공으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우리의 선택이기보다는 우리의 운명이었다. 즉 민주노동당의 모습과 성장 과정은 근본적으로 당이 태어난 시대와 나라가 21세기 초 대한민국이라는 사실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당의 창당 조건이 보수/자유 양당체제가 소선거구제 위에 정립되어 있고,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에 관심이 없는 조건 속에서 진보정당을 만들고자 했던 100년 전의 영국노동당의 처지와 같음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1900년 2월 27일 창당한 영국노동당과 2000년 1월 19일에 창당한 민주노동당이 어찌 그리 비슷하게, 또 혹독하게 어려운 조건에서 창당했는지! 물론 여러 차례의 고통스런 실패 끝에 그 길을 찾아낸 전사(前史)까지도 흡사하다.

▲ 영국 노동당을 창당한 케어 하디
100년의 시차를 넘어 케어 하디의 고뇌가 우리의 가슴을 후벼 파는 이유가 있다. (민주노동당이 여러 차례 집권하여 우리가 지금 공약하고 있는 것들을 거의 다 이루고 난 후, 창당 세대가 다 죽고 나서 토니 블레어 같은 후손이 나타나 ‘당헌 제4조’를 없애려고 시도할지는 모르지만 그건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당원을 좀 편하게 해줘야 한다

그리하여 민주노동당의 당원은 굳이 말하자면 대중에 속한다. 어떤 이념을 위해 자신이 가진 그 무엇을 즐거이 희생할 용의가 있는 ‘주의자’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취했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창당 전략 또는 성장 전략의 결과이다.

우리는 이념성보다는 대중성을 먼저 확보하고자 했다. 그래서 입당에 어떤 예비 기간도 두지 않고 제한도 두지 않았다. 그 전략이 옳았음은, 그리고 어렵사리 ‘민주노동당’이라는 당명을 채택한 창당대회가 옳았음은 지난 7년의 실천으로 충분히 검증되었다.

민주노총 조합원인 당원들도 단지 노동조합의 간부 또는 대의원이라는 이유로 조직의 결의에 따라 집단적으로 입당했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한 줄도 읽어보지 않은 건 당연하다. “우리 당의 당원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당헌에 쓰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길로 왔고 앞으로도 갈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분회장들은 분회 모임 참석률이 낮음에 지나치게 슬퍼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분회 참석률 20퍼센트를 한탄하는 것, 그건 민주노동당을 스스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당비’라든지, 당 조직 활동에서든지 모든 점에서 당원에게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의무를 지워서는 안 된다. 사실은 영국노동당처럼 차라리 노동조합 단체 가입의 경우도 인정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당원을 좀더 편하게 해주어야 한다.

민주노동당 대변인의 '개념없는 행동'

그런 점에서 당내 민주주의에서도 당원 직선의 경우를 가능한 한 줄여야 할 것이다. 당의 문턱을 가능한 한 더 낮추고,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는 한국노총 산하 노동조합들이 당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런 성장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최근의 박용진 대변인의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 비판은 ‘개념이 없는’ 행동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당에 어떤 도움이 되는 행동인지를 알 수 없다. 국민들의 눈에는 ‘지들끼리 싸우는 꼴’로 받아들여지거나, 아니면 이를 반박하는 한국노총의 이야기를 듣고서 비로소 민주노동당이 한국노총의 지지 마저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노총, 나아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대다수가 이용득 위원장의 행위를 ‘이해’하고 있다면 박용진은 더 신중했어야 했다.

이른바 민주노총의 도덕성 추락으로 인하여 민주노동당이 피해를 입은 이후에, 그리고 민주노총 산하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임금으로 인한 여론 악화를 느끼면서 민주노총과 거리를 두어 이른바 ‘민주노총당’을 벗어나야 한다는 일부 당원들의 생각도 조급한 측면이 있다.

민주노총을 벗어나면 날개를 달 수 있나?

민주노총만 벗어나면 날개를 달고 나를 것 같은가? 아니다. 그건 한화갑의 민주당더러 지역당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면서 전남이라는 지역을 벗어나면 더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사회당의 길이 아니라 노동당의 길을 가야 한다. 우리는 창당 전략을 지키고, 기본 노선을 지키고 일관되게 나가야 한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계급을 믿고 대중을 믿고 노동운동에 대하여 좀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그런 견지에서 본다면, 민주노동당 중앙위원과 대의원 지지단체 할당에서 28퍼센트로 되어 있는 민주노총 몫을 줄이려는 논의는 잘못된 것이다. 전농에 대한 14 퍼센트가 과대한 것이다. 이 비율은 국민 중의 농민의 비율의 두 배를 넘고, 당원 중 농민의 비율의 네 배를 넘는다. 이를 줄여서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옳다.

2.

민주노동당이 바로 그런 ‘영국노동당형 대중정당’이기 때문에 당 간부, 당 활동가들의 역할이 더 크고 중요하다. 당 활동가들에게 ‘양보하고 인내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당 활동가는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역사를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미 여러 차례 교육을 받은 고참 당원들, 다 아는 얼굴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메워주는 행사로 치뤄지는 ‘당원 교육’보다는 수준을 높인 당 간부, 활동가들의 ‘스스로 학습 프로그램’이 운영될 필요가 있다.

공부를 하되, 혹시 이데올로기적 편견 때문에 중요한 역사와 현실에 무관심하지 말자는 것이 내가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이다. ‘오랑캐’라는 편견으로 청(淸)나라의 역사와 현실을 외면하던 복고주의, 사대주의, 형식주의, 근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이었던 조선 선비들처럼 우리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근본주의 이데올로그였던 조선 선비를 닮지 말자

박지원이 본 청(淸)은 단순히 오랑캐 나라라고 치부하기에는 배울 바가 너무나 많은 대문명국이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역사와 성과를 편견 때문에 외면하지 말자는 나의 주장은 박지원의 주장과 같다.

오늘 우리가 홍역 같은 당의 위기 상황에서 읽는 선조 진보정당의 역사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들이다. 120년 전 비스마르크 치하에서, 반사회주의자법 아래에서 분투노력하여 대중정당으로 성장한 독일사민당 창업의 역사도 대단하다.

100년 전 자유/보수 양당체제가 이미 자리 잡혀 있고 소선거구제가 그 체제를 뒷받침하고 있었으며,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에 관심이 없고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낮고 그나마 조직된 노동자는 주로 숙련공들이어서 이른바 ‘노동귀족’으로 비판받고 있는 그런 악조건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거쳐 영국사회에 뿌리내리고 노동/보수 양당체제를 만들어 집권까지 한 영국노동당의 역사도 절실하기 이를 데 없다.

▲ 20세기 초 미국의 사회주의 지도자 유진 V. 뎁스
세계 진보정당의 시조인 독일사민당이나 중시조(中始祖)인 영국노동당의 역사만 중요한가? 어쩌면 1912년 대선에서 유진 뎁스를 내세워 6퍼센트의 득표를 하고서도 오래지 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진 미국사회당의 역사가 우리에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들이 미국의 영향 하에 만들어진 대한민국이 아닌가? 같은 소선거구제와 자유/보수 양당체제를 영국노동당은 넘어섰고 미국사회당은 극복하지 못했다. 성공만큼이나 실패의 역사도 중요하다. 그 차이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당에서도 무슨 문제를 토론할 때 영국노동당이나 독일사민당, 또는 미국사회당의 역사적 경험을 들어서 논하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거다. 고사(故事)를 들고 고인(古人)의 언행을 참고하여 옳고 그름을 논했던 선비들처럼 말이다.

"사민주의가 욕설이다"라고 쓴 이유

뿐만 아니라 역사를 공부해야만 보통선거권이 얼마나 소중하며, 4대 사회보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런 것들은 모두 선조 사회주의자들이 오랫동안 염원하고 지난한 투쟁으로 쟁취한 것들이다.

솔직히 실망스럽다. 내가 그토록 입을 열기를 촉구했던 1,000명의 공직 후보들이나 지역위원회 위원장들은 다 어디가고 최백순 동지가 비판을 제기하는가? 그것도 나의 주장이나 취지와는 별 상관없이 주로 나의 어법(語法)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민주노동당에서는 사회민주주의가 욕설이다”라고 진술한 것은 다만 당 간부들의 학습과 관심의 폭을 넓히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취지에서였다. 그런데 최백순 동지는 그 진술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고맙게도 나의 편에 서서 그를 반박하는 필명 '베른스타인'은 또 누구인가? 베른스타인이라는 필명을 보니 누군가 나에게 “사회민주주의자를 자처하니 베른스타인의 이론을 찬성한다는 건가?”라고 물어 무척이나 당황했던 기억이 새롭다.

▲ 독일의 사회주의 이론가 베른슈타인
난 실은 베른스타인은 한 줄도 읽지 않았다. 나는 베른스타인의 주장을 간접적으로 들었을 뿐이고 그 논리에 설득당한 것도 아니다. 나는 100년 전에 살았던 그 사람이나 그의 주장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다. 레닌이 그토록 격렬하게 비난했던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유럽 사민당들이 전쟁에 찬성한 행위에 대해서나, 제국주의 전쟁 참여를 반대하던 로자 룩셈부르크를 죽인 행위에 대해서 찬성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러나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특히 이론을 실천으로 검증하는, 다양하고 거대하고 의미심장한, 이전의 거의 모든 논의를 압도하는 세계사적 대실험들이 그 이후에 이루어졌다.

인류가 만든 가장 좋은 나라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실험이 끝나갈 무렵에 고르바초프가 말했던가?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나라 중에서 스웨덴이 제일 낫다고? 손에 만져지는 것을 믿고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그것이 대중이 생각하는 방식이고 나는 그런 사고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나는 대한민국의 백성들에게 스웨덴 사민당을 비롯한 유럽 중도좌파 정당들의 역사적 성과를 가지고 진보정당을 믿고 지지해줄 것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가라면 죄다 사기꾼으로, 도둑놈으로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백성들을 다른 무슨 이야기로 설득할 것인가?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가능한가? 물으면 우리는 어떻게 답하는가? “이미 유럽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답하지 않는가? 내가 무얼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이미 보수정당이 되었다고 말한다. 맞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 정당들은 자기들의 성과를 지키는데 급급하니 그것이 곧 보수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신좌파’도 나오고, 사회민주주의를 넘어서 세계사의 첨단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급진 좌파 학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럽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131세 되는 노인과 106세나 나이를 먹은 노인이 당뇨병과 치매에 걸린 모습을 보고서 7세 되는 어린이에게 고기를 먹지 말라 하고, 매일 그림 맞추기를 하라 하고, 심지어 “너희 할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자라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가?

사회주의, 사민주의 그리고 민주적 사회주의

나는 대한민국 운동권 바깥 어디에서도 ‘사회주의자’가 따로 있고 ‘사회민주주의자’가 따로 있다거나 ‘사회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가 대립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나의 느낌으로는 영국에서는 ‘사회주의자’라는 말을 즐겨 쓰고 독일에서는 ‘사회민주주의자’라는 말을 즐겨 쓰는 것 같지만 대체로 같은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학문적 개념으로 다소 엄격하게 구분하기로는 자유주의에 맞선 세계관 또는 사상으로서 ‘사회주의’를, 이를 실천하는 특정한 태도와 방식, 어떤 도그마에 얽매이지 않는 현실주의, 실용주의 실천 철학이나 그로써 이룬 바 ‘사회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사회민주주의자’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즐겨 쓰는 나의 습관이 거슬리는가? 아무래도 내가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호감을 (우리 당의 정치적 자원으로서) 중시하는 편인 것 같다. 그럼에도 나와는 다른 언어 습관을 가지고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부르기를 즐기는 김종철 동지가 영국노동당 출신의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과 자신을 동일시(同一視)하는 것을 보고서 나는 크게 안도했다.

나도 30년 전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에 크게 감명을 받아 영국노동당 당원으로서 영국석탄공사에서 일한 경제학자 슈마허를 존경한 적이 있는데 그 역시 영국의 유명한 사회주의자였다. 그리고 영국석탄공사는 애틀리 노동당 정부가 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 자본주의와 소련 공산주의 사이의 민주적이고 건설적인 사회주의 대안’을 현실화하기 위해 여러 산업들을 국유화하는 가운데 설립한 국영기업 중의 하나였다.

한 마디 사족을 덧붙이고 싶다.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말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나 유로꼬뮤니스트들이, 아니면 신장개업한 동유럽의 옛집권당들이 자기들이 만들고자 하는 나라를 스탈린이 만들었던 그 끔찍한 일당 독재 체제, 말하자면 ‘독재적 사회주의’와 구별하여 가리키던 말이다.

그러니 ‘민주적 사회주의’를 만들겠다는 우리 당의 약속은, 유럽의 사회민주당들은 이미 수십 년 전, 아니 백 년 전부터 거듭해왔던 약속이고 부분적으로 지키기도 한 약속이다. 그것 역시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3.

민주노동당 활동가는 대중과, 당원과 지지자와 그리고 우리가 지지를 받고자 하는 대중과 대화를 더 잘해야 한다. 그리하여 당을 노동자계급 대중이라는 물 속에 살아 헤엄치는 물고기 같은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물고기는 피부로 자기가 살아가는 물의 온도와 염도를 느낄 것이다.

우리 당의 가장 큰 문제는 수동적인 일선 활동가와 지역 조직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피부가 제 역할을 안 하는 것이다. 지역조직은 더 능동적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진리는 대중으로부터 나온다.”고 강조한다.

'정책의 정치화' 과정에 당원과 지지대중 참가해야

내가 “우리 당의 당론들이 원리론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은 당을 비난하기 위해서나 개별 당론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당론 형성의 과정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자는 취지다. 중앙당(정책위원회)이 원리론을 내놓고 정책연구원들이 원리론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당론의 형성 공정에는 다음 과정, ‘정책의 정치화 과정’이 있다. 당 일선 조직이 중앙당의 입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당원들끼리 토론하고 지지자 대중과 대화하여 현실론을 세우고 이를 중앙당의 원리론에 대치시켜야 하는데 그 소박하고 자연스런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일선조직들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당 간부, 당 활동가들이 노력하고, 원리론과 현실론의 내적 모순이 꿈틀거리는, 살아있는 당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른 거대 보수정당들은 국회의원들이 이른바 ‘민의(民意)’를 수렴하는 역할을 한다. 나름대로 지지층의 바램을 반영하는 것이고 그래서 의원총회에서 당론을 결정한다.

그러나 우리 당에서는 의원이 소수이고 또 의원 중심의 당론 형성을 배격하는 터인데 정작 ‘당의 주인’이자 당론 형성의 주역이 되어야 할 당원들은 수동적이다. 그렇다면 당 간부, 당 활동가들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마저 혹시 앞으로 공직 선거 후보라도 한번 하든지, 아니면 장차 비례대표 후보라도 한번 하기를 꿈꾼다면 당내에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하고 특히 거대 정파들에게 찍혀서는 곤란하니 혹 기존 당론과 다른 말이라도 한 마디 하는 걸 두려워한다. 민주노동당 간부, 활동가들에게 언론의 자유가 없는 것이다. 당내 민주주의의 과잉 속에 500만 지지자들의 바램이 당론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 구조다.

당내 민주주의 과잉 속에 5백만 지지자 바램 당론에서 소외

그래서 당 활동가들은 당의 이익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당리당략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활동가들의 사고방식이 명분론보다는 실리론, 형식론보다는 내용론으로 가야 한다. 종종 당의 이익이라는 판단 기준도 잊을 정도로 우리는 자기만의 논리에 갇힌다.

반년도 더 지난 민주노동당 당 대표 선거의 부정 논란이 아직도 결말이 나지 않고 검찰 고발까지 가는 건 민주노동당 활동가들의 형식론, 명분론에 치우친 사고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건 아닐까? 물론 부정 선거 혐의자를 대표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는 오기(?)도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민주노동당에서는 모든 것을 탄력성 있는 정치적 결정으로 채택하기보다는 법으로, 규칙으로 만든다. 지방선거 후보 20퍼센트 이상 여성 할당 제도를 보자. 그건 광역시도를 단위로 시도당 위원장이 책임지고 20퍼센트를 맞추라는 권고를 중앙위원회의 정치적 결의로 채택하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지역위원회를 단위로 강제적 규칙으로, 지역위원회 사정을 전혀 모르는 의원과 최고위원이 주도하여 만들어 놓았는데, 과연 그 규칙이 지방의원 중에 여성의원을 늘려 놓았는지, 아니면 지역위원회들에게 고통과 정치적 손실만을 주었는지 평가를 해볼 일이다.

내용 토론보다 규칙 논란으로 허비하는 회의

우리는 때때로 고루한 조선 후기 선비들처럼 형식론에 치우친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당기위원회로 가져간다. 회의는 내용 토론보다는 규칙 논란으로 시간을 더 많이 소비한다. 회의 규칙을 잘 모르는, 그러나 바로 그 분들의 이야기를 당이 듣고 당론에 반영해야 하는 소박한 대중 정서의 중앙위원이나 대의원들을 소외시킴으로써 당이 입는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회의 한번 왔다가면서 “아, 이 당은 나 같은 사람이 참여할 당이 아니구나!”라고 마음 깊이 느낀다. 그 마음을 다시 돌리기는 힘들다. 그래서 당은 안으로부터 허물어지는 것이다.

당대 선비들, 서인이든 동인이든 모두의 눈에 광해군의 실리주의, 현실주의는 명분론에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이야말로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재앙 그 자체였다. 성삼문이 충신이라는 명분론으로 보면 신숙주는 간신이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당대 백성들에게 성삼문이 그렇게 좋은 사람이고 신숙주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을까? 자신이 배운 공맹(孔孟)의 가르침을 누가 더 충실하게 따른 것인가? 한 가지 생각이나 논리에 너무 집착할 일이 아닌 것이다. 정치는 내가 아닌 만인(萬人)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만든 족쇄로 우리 발목을 채우기도 한다. 여러 사정이 있을 텐데 민주노총이 정치위원장으로 임명하여 추천한 사람을 “자진 사퇴한 최고위원이라 다시 최고위원으로 출마하면 안 된다”고 꼬장꼬장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 과연 당에 이익이 되는가?

겸직금지 원칙을 강조하는 의회주의자들

차라리 정치적 내용으로 반대를 한다면 당을 위해 무언가를 남길 것이다. 익산에서는 또 무슨 일이 있어 날이 갈수록 심각한 내홍에 시달리는가? 당내 정파 지도자들은 왜 이럴 때 나서서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않는가?

‘당직 공직 겸직 금지의 원칙’을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의회주의를 경계하여 스스로 세운 원칙이다. 그런데 실제로 실천에 옮겨보니 그 규칙은 무력했다. 흡사 해일을 작은 방파제로 막아 낼 수 없듯이 우리 당은 이미 의회주의에 흠뻑 젖었다.

국회의원은 배우이고 다른 모든 당원은 관객이 되었다. 예컨대 임기를 절반으로 나누어서 의원과 보좌관이 역할을 바꾼다는 독일녹색당처럼 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우리는 “국회에선 의원 아니면 인간도 아니다!”는 세상 이치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한국 정치에선 국회의원 아니면 X도 아니다”는 걸 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면 도움이 되나? 그렇게 해서 과연 진보정당 고유의 새로운 정치활동 방식과 정치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겠는가? 나는 ‘당직 공직 겸직 겸지의 원칙’을 부르짖는 바로 그 사람에게서 그 제도를 버릴 것을 주장하는 나보다 훨씬 심각하게 ‘내면화된 의회주의’를 발견하고 의아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론이, 세상이 국회의원만 찾는다고 우리도 국회의원만 찾아서야 되겠는가?

당원에게 편안함과 자부심을 주는 정당

독일사민당의 전 총재 라퐁텐이 쓴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다른 당원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당은 고향이자 가족이었다. 비스마르크에 의해 억압받고 나치에 의해 박해받은 사민당은 당원들에게 서로를 위하는 인간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다는 믿음을 주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당원에게 당은 따뜻함과 편안함, 연대감과 자부심을 주어야 한다. 즉 내면적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당을 통해 세상을 보고 이해해야 한다. 당 간부, 활동가들이 아니고 누가 대화와 소통을 통해 이런 당을 만들 것인가?

4.

무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할까? 당이 월급을 주고 4대 보험을 들어주어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구분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주장의 핵심이다. 물론 현실은 조금 복잡하다. 당이 공채를 시도하지만 우리 당이 제시하는 열악한 조건으로 특별한 인연이 없는 사람이 누가 오겠는가?

그러다보니 당 사무원도 당 활동가 중에서 누군가가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를 당 사무원으로 채용하면 당이 최소한의 생활 임금을 보장하고 4대 보험을 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신분은 활동가와 분명하게 구분을 해야 한다.

정당법에서 중앙당 100 명, 시도당 100 명이라고 한정해놓은 숫자는 당 사무원, 당에서 4대 보험을 들어주어야 할 사람의 숫자이지 당 활동가의 수가 아니다. 이 정도 규모이면 우리 당의 재정 규모로 보아서 결코 모자라지 않는다. 당이 사무원의 숫자는 되도록이면 줄이고 대신에 임금을 현실화하고 사업 예산을 늘려야 한다. 즉 당 사무원에 대해선 소수정예주의로, 전문성을 가진 사람 위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오랜 주장이다.

법과 상식대로 당을 운영해야

지역위원회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지역위원회가 법에 정해진 대로 그야말로 당원들의 자발적 활동 단위로서, ‘당원협의회’로서, 당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역위원회는 지회, 분회와 마찬가지로 당 활동가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발성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며, 그런 점에서 우리 당이 취해온 정책, 지역위원회 사무국장의 활동비를 중앙당이 지원한 정책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중앙당과 시도당에 재정을 집중하여 국회의원 보좌관, 정책연구원, 당 사무원들의 임금 현실화, 전문성 강화, 4대 보험 가입, 사업비 확보를 해야 한다는, 요컨대 법대로 상식대로 정상적인 당 운영을 해야 하고, 그것이 당 혁신의 물질적 기초이고 출발점이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는데 이 간단한 주장을 곡해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니?

우리 당은 정녕 공식 당부(黨府)와 거기서 일하는 사무원과 지역위원회, 지회, 분회 같은 당원들의 자발적 조직 단위와 거기서 활동하는 당 활동가(자원 활동가, 당 간부)를 구분할 능력도 없다는 말인가? 그래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지도’를 받아 강제적으로 그런 길로 마지못해 끌려가고 있다는 말인가?

혹시 지역위원회 상근자의 관점은 크게 다른가? 부산시당 해운대구위원회 조직부장 손은숙 동지의 말을 들어보라.

민주노동당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

“부산시엔 14개의 사무실이 있다. 그 14곳에선 14명의 상근 활동가가 매일 거의 동일한 일을 한다. ... 그 중 한두 사람만 해도 되는 회계처리와 기타 실무를 14명이 하면서, 당원들과 지역 주민을 만나거나 구정 백서를 보고 지역 현안을 찾아야 하는 시간보다 컴퓨터와 전화기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다.”(<매일노동뉴스>, 2005년 12월 19일)

“공직 선거에 여러 차례 낙선하고, 당원들은 수동적이고 편히 대할 동지라기보다는 가장 까다로운 고객처럼 다가와 마음 깊이 좌절하고 외로워하고 있는 당 활동가들이여, 먼저 마음을 편히 하라, 역사를 공부하라, 그리고 자부심을 가져라.”

이것이 내가 나 자신을 포함하여 당 간부, 활동가들에게 건방지게 고하고 싶은 이야기다. 대부분의 중앙당과 수도권 당 이론가들, ‘기호학파(畿湖學派)’가 “수렁에 빠진 당을 구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영웅대망론으로 나갈 때 당 간부, 활동가에게 기대를 걸다니 난 역시 고루한 ‘영남학파(嶺南學派)’에 지나지 않는 걸까?

나는 왜 공직 선거 후보 경험을 한 1,000명의 동지들과 지역위원회 위원장들에게 기대를 거는가? 지역위원회 위원장들이나 공직 선거 후보로 나갔던 사람은 지역 사회에서 민주노동당의 차기 공직 선거 후보로 받아들여진다.

날개는 없고 다리가 달렸으니 날 수가 없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묻질 않는데도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무언가를 묻고 말한다. 민주노동당의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반대하며 어떤 면에 대해서는 호감을 표시하고 어떤 면에 대해서는 반감을 표시한다. 말하자면 일상생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대중과 더불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택동이 말했던가? “조사 없이 발언권 없다”고. '촌놈'이 모스크바 유학하고 돌아온 똑똑한 젊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공직 선거 출마 경험을 가진 1,000명과 지역위원회 위원장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직하게 보고 듣고 느낀 바를 말할 수 있는 당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세계 모든 진보정당에서 그러했듯이, 그들로 하여금 당의 오른 쪽 날개가 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우리 당에는 왼쪽 날개는 있는데 오른 쪽 날개가 없다. 오른 쪽에는 날개가 아니라 다리가 달려 있으니 날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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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9월 06일 (수) 09:36:47주대환/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redian@redian.org

전체기사의견(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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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
(203.XXX.XXX.44)
2006-09-07 22:21:48
//
주대환 당원이여
당신이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했다고 해서 오늘날 당신의 변절과 개량화가 용서받을수는 없습니다
질문있어요
(211.XXX.XXX.157)
2006-09-07 19:16:47
//
다리는 주사파인가요?
...오른쪽에는 날개가 아니라 다리가 달려 있으니 날 수가 있겠는가? 다리는 혹시 주사파를 말하는건가요? 자민퉁인지 주사파인지 친북민족주의자들은 진보정당에서 떼어내야 할 혹이지 다리도 아닙니다. 다리는 그나마 걷기라도 할 수있으니 비유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쨋든... 주사파 때문에 당이 날 수가 없단 말은 맞네요.
당원
(218.XXX.XXX.241)
2006-09-07 18:40:36
//
계속 오른쪽 날개를 그리워하시는...
그 왼쪽의 힘이 바탕이 되어 오늘의 민주노동당의 뿌리가 생겨났죠. 그런데.지금 민주노동당은 당내 우파가 장악하면서 충분히 오른쪽으로, 너무나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가고 있죠. 계급운동과 당운동이 따로따로 놀고 있죠. 당내 어디에도 계급운동을 위한 전략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없죠. 그런데 아직도 오른쪽 날개가 필요하시다고 하니..옛날처럼 용감하게 '왼쪽날개를 꺾어라'고 주장하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당원
(218.XXX.XXX.241)
2006-09-07 18:37:21
//
언제나 오른쪽 날개를 꿈꾸시는 분
87년인가요.. 사회주의 계급운동의 3대 원칙을 폐기선언하시고 '한국노동당'인가를 만든것이..전위운동과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얘기하기 시작할 때죠. 노동자계급운동의 씨도 트기 전에 주대환 당원께서는 좌파의 싹을 싹뚝 짤라야 한다고 선언하셨죠. 충격이었죠..그때. 혁명운동이니 계급운동이니 첨 접하며 내면적 갈등을 겪던 시절이었으니...그런데 3대원칙 폐기선언이후 운동은 오히려 더 왼쪽으로 갔지요.
변하는 것은 자유?
(210.XXX.XXX.185)
2006-09-07 15:50:50
//
주대환은 왼쪽 날개가 필요하다
이땅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게급잔선에 타협지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남한 자본가를 자선사업가로 보나?
노동계급이 자본가의 양보를 얻어내 사민주의적 정책만이라도 획득할 조직적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시나?
주대환은 꿈속에서 그림을 잘 그리시는군
아니올시다
(211.XXX.XXX.235)
2006-09-07 12:08:25
//
더러운 반북종파분자 된장남
주대환이.꼬롬한 반북간신 주대환이.밥은 먹고 다니시오?
Tnr
(222.XXX.XXX.71)
2006-09-07 11:12:49
//
레디앙이 생겼을때,
이런 비판과 반성의 열린자리가 되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정파든 머든 간에 열린자리에서 싸우고 비판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돌아서 가든, 느리게 가든 적어도 고여서 썩어없어지는 것은 없겠지요

(211.XXX.XXX.33)
2006-09-07 10:02:34
//
아래 ↓안타까움아
난 니가 더 안타깝다...쯧쯧..
안타까움
(218.XXX.XXX.28)
2006-09-07 02:24:43
//
어찌하여 개량주의가 판을 치는가?
혁명없이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건설할 수 있는가?
동구, 소련의 현실사회주의가 망한 뒤로 기회주의 판을 치더니
아직도 그 후과가 크도다!!
오호 통재라!!! ㅠㅠ
ㅍㅍ
(221.XXX.XXX.49)
2006-09-07 01:15:25
//
잘 모른다고 하셨지만...
베른슈타인 형님하고 친하신듯^^
eco
(218.XXX.XXX.125)
2006-09-06 22:33:23
//
영국노동당 당헌 제4조
“육제노동자와 두뇌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력에 대한 충분한 과실을 획득하고 그 과실의 가장 공정한 배분을 확보하는 것은 생산, 분배, 그리고 교환수단의 공공소유와 모든 산업과 서비스에 대한 가능한 최선의 인민에 의한 관리와 통제체제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영국노동당 당헌4조)”
강원당원
(221.XXX.XXX.57)
2006-09-06 22:15:09
//
역시! 주 대환
활어같은 글 잘보았읍니다.감사합니다.
안산당원
(218.XXX.XXX.149)
2006-09-06 21:13:46
//
덧붙여서
오른쪽을 원하면 우파정당을 만들면 됩니다.좌파정당에 보수에서 진보까지 있는것은 모순입니다.아울러 주대환 당원은 우리당의 왼쪽날개가 비정상적이라고 생각 하는 모양인데 어떤 부분이 왼쪽의 내용이 과한지 말씀해 주십시요 낵가 보기엔 서구 사민주의 정당만도 못한 정당이라도 생각되는데 선수들의 정당을 만들려나 보지요?
안산당원
(218.XXX.XXX.149)
2006-09-06 21:05:45
//
불편합니다.
좌파정당에서 오른쪽 날개가 중요한가요? 그렇잖아도 좌파정당에 오른쪽인분들이 너무 많은것 같은데 말로만 좌파하면 뭐합니가? 행동은 우파인데 주대한 당원 뭔가 잘못 알고 계시군요.
징검다리
(222.XXX.XXX.51)
2006-09-06 21:02:05
//
공직출마 경험이 있는 800명의 당원들과 지역위원장들이...
무엇에 억눌려 말 못하는것일까요? 그들이 거의 각 지역에서 대표선수들인데, 어떤 분위기가 그들의 입을 막고 있을까요? 그들 자체의 문제는 없다구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당의 왼쪽날개가 있기는 한 것일까요?
아지매
(58.XXX.XXX.45)
2006-09-06 18:50:32
//
안 편한 민주노동당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첨 민노당 신입당원환영회끝마치고는 괜히 들었나보다 하고는 진짜 후회막급이었습니다. 노회찬,단병호,심상정,강기갑의원 보고서 이제야 진보정치인들이 국회로 나서는구나 개혁당의 실패를 교훈삼아 민주노동당에 힘을 실어주고 당원으로써 열심히 하고자 하는 설레는 맘이 싹 가셨습니다. 한마디로 지들끼리 놀더만요. 분회도 두세명모이다 말고...당비가 아깝단 생각들지만 이사가기전까진할수없죠
김현익
(211.XXX.XXX.49)
2006-09-06 18:27:19
//
강력한 분단국가의 최대의 비애는 오른쪽 사회주의자들의 씨가 마른 것
사실 좀 이야기된다고 생각하고 유럽의 선조진보정당이야기해보면 감작 놀랍니다.
더욱 놀라는 것은 민족주의가 대단한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지요. 현실정치에서 기겄
향리주의적 보수정치인을 지지한 주제에 사민주의 졸로 보는 것이지요. 충격이지요.
이것은 음흉한 백색테러이지요. 바로 자주, 지역주의, 한나라당, 조선일보 이야기.
모든 문제는 지성적 사회주의자들이 희귀하다는 것.이상이하도 아니다.전생의 업보!
김현익
(211.XXX.XXX.49)
2006-09-06 18:17:26
//
사민주의적 에너지는 단순히 생각이나 신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장님은 현재의 당활동가들이 사민주의보다 높은 것을 지향하는 것이 문제이고 그렇다면
그들이 의장님의 생각대로 변화하여 행동한다면 가능성이 잇다는 선의의 기대를 하시는듯합니다. 홍상수감독 변함이 없지요.(사적인 퇴행적 성관계야기)김기덕도 자학적인 인간관계의 고뇌로 일관하지요. 류승완이 깡패영화밖에 없지요.
특히 한국의 사회운동과 좌파들은 재야세력의 의미가 관습장외정치이지요.
김현익
(211.XXX.XXX.49)
2006-09-06 18:03:20
//
새로운 당혁신이 여의치않는다면
역사의 벼랑끝에서 사민주의적 유기적 희망의 전사들이 당을 사회주의적 세심함으로
어크로스하다가 천명의 시기에 통합진보당을 통하여 2015-2025년의 진보대운의 시대에서
반드시 집권할 운명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영국의 노동당과 달리
너무나 조야한 인민연합적 당(민족민주운동권의 의회주의적 버젼)으로서 의장님의 고결한
현실주의적 희망의 원리를 기다리기에는 이미----
김현익
(211.XXX.XXX.49)
2006-09-06 17:58:59
//
미테랑 사회당의 역사적 교훈을 배우며
강력한 공산당과 통일사회당이 역사적 사회주의적 대의에는 충실했지만
대의적 집권비젼을 보여주지는 못하자 1971년에 사회당을 창당하여
결국 10년을 몇달남겨두고 극적으로 집권을 하였고 공공성의 확대(국유화)라는
실험을 야심차게 시도하였습니다. 주대환의장님말씀대로 현재의 당지도자들이
극적으로 새로운 변화속에 비젼을 보여주길 저같은 지식인들이 아주 고대할 것이지만
당원
(218.XXX.XXX.241)
2006-09-06 17:40:37
//
직책에 대한 권위의식
레디앙 기사에 '전 정책위의장'이란 전력을 넣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순수하게 당원의 지위로 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sd
(203.XXX.XXX.183)
2006-09-06 17:10:01
//
또한
남한사회의 법이 지배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법이기에 주대환 당원이 말하는 법과 상식에도 동의할수 없다
sd
(203.XXX.XXX.183)
2006-09-06 17:07:39
//
한국노총을 비판하는것은 정당하다
한국노총은 오래전부터 어용노총이었고 노동자계급의 이익보다는 자본가계급의 이익에 복무해왔고 항상 민주노총 뒤통수를 치기 바쁜 자들이었다

그런 한국노총을 비판하는것은 지극히 정당한것이며 이를 비난하고 있는 주대환 당원의 글이야 말로 개념없기 그지 없다
주대환해설가
(222.XXX.XXX.116)
2006-09-06 16:51:34
//
이용득 위원장을 박창완 후보 후원회장으로....
모시고서 당원들 마음이 편치 않았지요. 우리가 겉다르고 속다른 행동을 하는 거니까요. 마음에 상처를 남겼고 이용득 위원장 반론 나름대로 국민설득력 있었지요습. 노동문제 논평은 신중하게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회장 출신에게 맡겨놓지 말고...주대환 위원장은 항상 "사회민주주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대목을 학자들의 허황된 말이라고 비판해왔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런 뻥도 필요하는 생각이지요. 세대차이랄까...
켄타우르스
(220.XXX.XXX.12)
2006-09-06 16:48:41
//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당을 지지하는 대중은 보지 않고 "사소한" 문제에만 얽매있는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당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이 가슴 절절이 느껴집니다.
양다슬
(61.XXX.XXX.34)
2006-09-06 16:41:57
//
한국노총 비판이 개념없다면
박용진 동지의 한국노총 비판이 개념없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야합에 이른 한국노총의 몰역사적 개념없음과
이에 대한 주대환동지의 몰계급적 개념없음과
거의 동급이라고.
만약 민주노동당이 지금 한국노총을 비판하지 않았다면, 이것 또한 민주노동당 종말의 징후임이 분명하다고.
양다슬
(61.XXX.XXX.34)
2006-09-06 16:37:51
//
많은 부분 동감합니다.
선거 자체의 문제, 지구당편재와 관련한 문제, 당원들의 자발성을 높히지 못하는 문제.
이런 것들은 나름대로 고민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주의자든 사회민주주의자든 간에 주대환 동지의 최근의 언행들은
정치적인 선동으로만 가득찬 것 같아 보이는군요. 마치 정파를 뛰어넘는 듯 하면서
결국 형해화된 정파들 사이의 또다른 정파를 등장시키려는 모습.
주대환해설가
(222.XXX.XXX.116)
2006-09-06 16:29:42
//
주대환 위원장 무언가를 빠트렸군요...
"경총위원장인가 노총위원장인가"라는 대변인 성명에 대해 지적하면서 그것을 분명하게 하지 않았군요. 그 성명과 그에 대한 한국노총의 반론 '너희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무얼했느냐, 우린 투기자본이 아니라 건전한 산업자본 유치를 하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지요. 이영희 최고위원 후보에 대해선 주대환도 정치적 비판을 하라는거지요.사퇴한 사람이니 무어니하는 형식비판말고..
참이슬
(147.XXX.XXX.53)
2006-09-06 15:55:29
//
문제가 되는 부분 2
2. 이영희 최고위원 선출 무산 사태에 대한 비판
=> 이 역시 정치적으로는 민주노총과 당의 관계, 솔직하게 말하면 국민파와 중앙파&전진 사이를 나쁘게 만드는 요인으로 생각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파 구도를 떠나 이영희 최고위원의 자질이 문제가 있을 뿐더러 정치적 도의를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평당원들도 많았던 것 역시 사실 아닙니까? 그럼에도 정파구도의 안배가 잘 이뤄지지 못한 것만 아쉬우신지요?
참이슬
(147.XXX.XXX.53)
2006-09-06 15:48:36
//
몇 가지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네요
1. 박용진 대변인의 한국노총-경총 복수노조 허용 &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안 5년 유예 합의 비판
=> 주대환 동지는 정치적으로 한국노총을 쓸데없이 자극한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조 활동가나 삼성, 포스코 등 어용노조가 있는 사업자 활동가들은 한국노총의 합의에 분노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단결권을 부정하는 한국노총 결정을 비판한 것이 과연 "개념없는 행동"입니까?
세가지색
(218.XXX.XXX.87)
2006-09-06 13:55:59
//
다른 건 모르겠고..
그래서 당 강령도 바꾸자는 얘기인지요?
안양
(221.XXX.XXX.153)
2006-09-06 11:27:25
//
적극 지지
위 내용에 지지합니다. 당원이 보기에 당이 너무 멉니다. 그리고 선거가 너무 많아요. 당비 꼬박꼬박 내는데 당에서 다가오는 것이 없고 가져가려고만 합니다. 서명, 집회, 모임, 회의, 선거... 가끔 들리는 얘기는 지들끼리 싸운다는 것이고. 모든 것이 절망인 시대에 민주노동당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는데. 아직 멀었어요.
이상한 모자
(211.XXX.XXX.152)
2006-09-06 11:24:00
//
이 글을 읽으니
감았던 눈이 띄여지듯 마치 새 생명을 얻은 것처럼 앞길이 훤히 보이는 느낌입니다. 신에게는 운장, 익덕, 자룡같은 용장이 있으나 천하삼분지계를 논할 현인이 없습니다. 부디 중산정왕의 후손인 저의 군사가 되어 천년만년 살고지고~ 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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